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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6 등록금: 구조의 문제 혹은 사고의 고착 (5)
  2. 2009/04/15 교육의 소비 주체로서 올바른 권리 행사를 하고 있는가? (3)

등록금: 구조의 문제 혹은 사고의 고착

Scribbles/Random thoughts 2011/04/26 01:00

자본주의의 최고 미덕은 능력주의(meritocracy)에 의한 계급상승이다. 개인의 배경과 무관하게 제대로노력하면 인정을 받고 성공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오늘날 지배적인 경제체제로 자리매김했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시기 마다 대중에 내세울 상징적 인물들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때 상징성을 지녔던 재벌집단이 훑고 지나간 사회는 황량하다 못해 삭막하다. 다수의 국민은 그들이 펼치는 생존경기에 내밀린 개인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서 특히 슬픈 현실은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처절하게 달리고 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어째서, 무엇을 위해 그토록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젊음을 바치고 있는가?

최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아마도 민주화 운동 이후에 학생집단이 이 정도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나 싶다. 주제는 늘 한결 같다. 등록금이 과도하게 높고 경쟁이 단군 이래 가장 치열하여 취업하기 어렵다는 내용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부류도 있고 냉담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암흑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구조

문제는 능력주의의 폐단이다. ‘경쟁은 어떤 개인의 능력이 가장 우수한지 가리는 수단일 뿐이다. 구조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조기교육이 낳은 악은 어린아이들에게 화합이 아닌 경쟁을 주입했다는 점이다. 실은 계급상승의 환상 보다 하락이라는 공포가 더욱 채찍을 들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로부터 파생된 현상을 진찰할 필요가 있다.

하소연을 늘어놓는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구조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고, 오직 부조리한 기득권층에 어떻게든 편입하고 싶어서 조바심을 내고 있다.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는 학우들을 욕하지만 그들처럼 방학이 오면 연수를 가서 이력서를 화려하게 장식하고자 하며, 대기업에 취업하여 기득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생각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입으로 기성세대가 경쟁을 미화하고 부추긴다고 욕하면서도 몸으로는 분주히 복마전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불만은 가득한데 대안을 찾기 보다는 앞만 향해 가려고 한다. 앞을 향해 가고자 한다면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극복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대규모 학생운동이 너무나 당연한 해답임에도 조직적인 시위를 하는 학생회는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보자. 과거처럼 목숨을 걸고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자는 것도 아닌데 단결된 운동을 안 하는 이유는 마음속으로는 주변 경쟁자가 탈락하길 바라는 이기심 때문 아닌가? 남의 손을 더럽혀 공동의 이익을 확보하되, 그 사이에 본인은 그들을 앞서가고자 하는 옹졸한 사고가 아닌가?

정치과정이 답일까? 야권은 자중지란 보다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총체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기존까지 진보나 좌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분배 조차 우파에서 선택적 복지로 포장하여 가로챘으며, 중도까지 과감하게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야권의 구호를 차례로 붕괴시켰다. 미국의 공화당, 이태리의 포르자 이탈리아 우파정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의 불만이 커질수록 오히려 우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 중 하나는 외부요인으로 탓을 돌리고 민족주의를 자극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에 편입하고자 하는 청년층은 보수에서 들고 나오는 승부수에 그러니까 진부한 부의 축적과 신분상승이라는 선전 휘말리게 되어있다. 지금 대통령과 보수당을 뽑은 국민들을 보라. 선거가 현실개선에 요원한 이유다. 이런 사유로 구조 내에서 정치적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 정치의 틀 밖에서 급진적인 운동을 통해 일으킨 변혁을 정치 구조 내부로 내던져야 한다. 하루가 멀다고 축적되는 청년층의 좌절과 분노는 이런 경로로 사용하지 않으면 보다 깊은 실망감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자들이 알아서 경쟁을 해준 덕에 채용이 용이했다. 그러나 요즘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이 대학교들이 학점에 관대하여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황당한 발언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교육기관이 기업의 인사평가를 위탁 받은 하청업체가 아니지 않은가? 지원자를 변별하는 행위는 기업의 책임이 아닌가? 자신들의 업무태만을 어찌 교육기관에 전가하려 드는가? 이는 오만방자한 태도다.

근데 대학들은 자신들의 신규채용, 즉 신입생 모집을 위해 학점을 남발하고 있다. 상위권 대학이 아니라면 취업이 잘된다는 사업설명서가 통하니까. 이 와중에 아쉬울 게 없는 상위권 대학은 등록금을 더 올린다. 대학재단의 투기 악순환은 골이 깊고, 교육을 위한 재투자는 부실하다. 누군가 당선을 목표로 반값 할인이라는 거짓 공약을 지킨다고 가정하자. 아니, 유럽처럼 국립대학은 아예 면제를 해준다고 하자. 우리가 당면한 구조 앞에서는 초유의 고학력자의 대량 실업으로 밖에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문제의 일부가 됐다. 통계청에 의하면 2011 3월 청년 실업률은 9.5%로 연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비 실업자들이여, 40만 명 남짓한 청년층 무직자 공동체가 여러분을 환영할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이하 과기원) 문제를 살펴보자. 교육개혁의 시행착오를 뼈저리게 보여주는 이 시대의 비극이 여기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과기원 재원이 불상사를 일으켰을 때 비로서 사회는 관심을 갖는다. 여기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인권의 차등화가 그것이다. 여기서 나타난 현상은 비극으로, 사회구성원들 조차 사람의 귀천을 나누는 데 동조해버렸다. 심지어 젊은 검사가 죽어도 언론이 보도하지만 다른 여러 대학이나 고등학교 학생들의 자살은 아예 다뤄지지 않는다. '보라! 인재께서 타계하시면 세간이 주목한단다!' 반면 그 존재의 흔적 조차 남지 않는 소외된 이들은 인간의 자격에도 들지 못하나 보다.

두 번째는 능력주의에 편승한 편법적인 대학 순위 조작이다. 교육기관에 등급을 매기는 행위는 정당하다. 국가는 자국민 중 우수한 인재를 양성할 의무가 있으며 자국의 교육위상 제고라는 숭고한 목적을 달성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오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순위 조작은 옳지 못하다. 과기원을 비롯한 서울에 있는 모든 대학은 점수 올리기에 혈안이 돼있다. 채택한 방법론이 근본적 문제다. 숫자놀이로 전락한 몇 가지 예를 들면 교수의 논문발표 빈도, 외국어 강의 개수, 외국인 재학생 인구 따위의 숫자에 목매달고 있다. 서양교육체제를 채택했으면 기본부터 제대로 다졌어야 한다. 쉽게 풀이하자면 인위적으로 평가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요령만 짚어서 고른 성장이 아닌 기형적 외관 차리기에 몰두했다는 말이다. 저명한 학자들을 영입하여 학생을 가르치지 못할 망정 퇴직관료들을 몰래 불러들여 수업 한번 시키지 않고 임금을 지불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과기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편법으로 비약적인 약진을 실현했다.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까닭은 강제된 제도가 선순환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 공약을 지키지 않은 정부가 하나 더 있다. 작년 5, 영국 자유민주당 대표 닉 클레그는 대학 등록금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공약하였고, 다수당이 되지 못하자 보수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들은 긴축재정을 이유로 2010 129 고등교육 지원금을 감축하고 기존에 3,290 파운드였던 등록금 상한제를 9,000 파운드로 올리는 법안을 표결에 부친다고 공표했다. 11 10일부터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됐다. 법안 투표일인 12 9일까지 네 번의 시위가 일어났는데 영국 각지에서 모인 학생과 교수 등 매번 25,000~52,000명이 집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일 의회에서 법안은 통과됐다. 허나 민중의 분노는 식지 않아 3 26일에 노동조합회의 주최로 일어난 반정부 행진시위에 학생들을 포함한 영국인 40만 명(위에 언급한 한국의 청년층 실업자 수치와 대략 일치)이 참여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들은 5 1(May Day)에 재차 집회를 갖기로 했다. 한편, 웨일즈 정부는 웨일즈 학생의 등록금 동결을 약속했고,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 정부는 스코틀랜드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등록금 면제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대학생들과 교수들, 강사들은 숨죽이고 세태를 관망하고 있기만 할 것인가? 나는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게 학교 밖으로 나와서 움직이라고 간청한다. 일부 학생회는 비정규직 인부들의 최저임금 달성이라는 작은 승리를 쟁취했다. 이 자신감을 가지고 보다 급진적인 운동을 펼쳐야 한다. 급진적 운동을 과격시위로 착각하지는 말길 바란다.

틀 안에서 개선은 단순하지만 어렵다. 정치인들이 조속히 재벌기업의 정규직 채용 확대 법안을 통과시키고 비정규직 연장을 철폐하면 큰 숫자를 흡수할 수 있다. 어려운 이유는 정경유착이라는 철의 장벽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을 다시 짜는 게 어떨까? 아이들 교육부터 다시 손봐야 한다. 경쟁과 취업만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반드시 서울과 인근 위성도시에 집을 소유하고 차도 몰아야 한다는 구시대적 유물론으로부터 거리를 두자. 철학은 커녕 자기개발서 조차 제대로 읽히지 않는 문화를 개선하자. 이렇게 될 때까지 급진적인 운동의 불을 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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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Tom] 2011/04/26 01:19 Modify/Delete Reply

    불과 2년 전에 등록금과 관련된 다른 글을 작성했는데 나의 변화가 새삼 놀랍다.

  2. sujin 2011/04/26 01:30 Modify/Delete Reply

    하나 더!
    최저임금의 현실화요~

    • BlogIcon [Tom] 2011/04/26 01:34 Modify/Delete

      옳은 말씀입니다. 별도의 글로 다루고 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대안을 갖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이 지켜져야 합니다.

  3. BlogIcon jangpa 2011/04/26 16:43 Modify/Delete Reply

    지젝 말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그리고 공부해야지요' 이런 사회적 현실에서는; 그래서 급진적 운동의 불이 켜질때까지!

  4. BlogIcon [Tom] 2011/04/29 14:14 Modify/Delete Reply

    취업률에 목매야 하는 슬픈 대학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754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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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소비 주체로서 올바른 권리 행사를 하고 있는가?

Scribbles 2009/04/15 02:27

"평범한 미대생의 삭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비를 부담하지 못하는 것은 교육을 구입할 지불능력의 미달을 뜻한다. 교육의 기회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보기 좋다. 그 시간에 다른 방법으로 교육비를 조달하기 보다는 시위를 하는 방법도 나쁜 선택이 아니다. 누군가는 해줘야 하니까. 그러나 삭발이 이성적인 행동은 아니거니와 이들의 주장에서 제대로 된 논리를 찾기 힘들다.

 

무엇보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장면은 삭발을 하면서 우는 모습이었다. 과거에는 삭발을 하며 비장한 표정이라도 연출했지, 이건 무슨 곱게 자라 험한 꼴 한번 안 본 아이가 자신의 생머리가 아까워서 우는 표정이 아닌가? 기사를 인용하기도 싫고, 할 가치도 없다. 다시는 어설픈 쇼 따위를 하며 비겁한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한다. 만약 작업의 형태로 진행한 퍼포먼스였다면 최하점을 주고 싶다.

 

언론에서는 여성 총학생회장의 삭발만을 조명하고 있는데 균형 잡힌 보도를 위해서는 다른 나라, 혹은 능력이 부족하면 다른 전공들과 비교를 했어야 한다. 이 학생이 미대생이라고 하니 귀찮지만 외국 미대들과 비교를 좀 해보자.

 

간단하게 요약하여 일년 등록금만 $20,000 ~ 40,000 정도로 보면 된다. 참고로 페인팅에서 1위인 Yale은 순수 학비만 일년에 $28,500이다.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의 경우 학점당 $1,140, 일년에 18학점을 들으면 $20,520가 나온다. 4 15일자 서울외국환중개 고시 매매기준율이 USD/KRW 1,325.30 이니 일년에 최소 2,650만원이 드는 셈이다. 외국에서는 교육을 위해 대출을 받고 몇 년 혹은 몇 십 년에 걸쳐 돈을 갚아나간다.

 

등록금 인상이 대두될 때마다 다른 쪽의 목소리는 누가 내는가? 물론 등록금=교육의 질의 공식을 제대로 성립하지 못한 학교측의 잘못도 있다. 그러나 교육에 종사하는 교수, 그리고 그 보다 훨씬 어려운 위치에 있는 강사들의 입장은 도대체 누가 대변하는가? 예쁘장하게 생긴 여대생이 삭발하면 띄워주고, 힘들어하는 강사들이 시위하다 강제해산 되는 현실은 어디에 처박아 놓은 것인가?

 

학생들은 3월에 교수들의 비리 조사를 무마하기 위한 입시 실기의 폐지 소식을 보고 느낀 것이 없는지 되묻고 싶다. 양질의 교수진과 커리큘럼을 원한다면 그 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수준이 나오도록 성숙한 소비자의 역할을 해야지, 자발적으로 교육의 질을 떨어뜨려 다른 학생들과 교육계 종사자들에게 선의의 피해를 주는 행동은 자제해야겠다. 어째서 무능하고 비윤리적인 교육자들의 퇴출과 교과과정의 시정을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는가?

 

동조하는 학생들아, 고등교육을 받고 싶으면 착각에서 깨어나도록 해라. 대학이 취업을 보장시켜주는 곳도 아니고, 미술 업계에서 그런 썩은 정신상태로 생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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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iro 2009/06/30 08:14 Modify/Delete Reply

    하하,,,글 읽고나니 좀 웃기네요.

    일단 교육을 소비로 판단하는 것. '제도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과 '소비로서의 교육'이라는 관점과 함께 이 글에 공존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학생들을 교육 소비자로 보기 시작할 때, 교육은 소비에 대한 지출을 요구하게 되며 그 순간 교육의 퀄리티는 지출능력에 따른 불평등화가 가속되는 것이며 그 '좋은 퀄리티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집단과 동시에 상대적인 교육 불평등에 따른 약자들도 분명히 존재하게 될 것 아닌가요? 그렇게 된다고 해도 '너희들은 교육 소비자니까 합당한 가격을 지불해라'고 하실건가요?

    두번째는 우리나라의 등록금에 관련된 제도를 외국, 그것도 단순히 '미국'만 대상으로 단순 비교를, 그것도 비교에 대한 정확한 기준조차 없는 상태에서 비교하셨는데, 먼저 미국학생들이 그 비싸다는 등록금 중에 얼마나 부담하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고 갚아 단순히 '자기들이 평생 갚아 나간다'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대출과 이자에 대한 비교도 분명히 들어야지요. 또한 외국 학생이나 가정의 평균수입/지출 패턴이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많이 다르다는 점, 그리고 외국에는 국내보다 많은 수의 장학금 제도가 존재하는 것과 금융적인 지원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는 점은 왜 언급이 없나요? 미국 예로 드셨는데, 그럼 다른 나라들 한번 보죠. 영국은 1년에 대략 2000~2500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하는데, 이 중 학생 부담은 약 25%~30%수준에 머물러있습니다. 나머지는 국가에서 보조금을 학교에 직접 지급하지요. 노르웨이같은 경우에는 국가에서 100%지원해주며 외국인학생 포함해서 생활비까지 보조해줍니다. 단순히 '미국애들이 우리나라보다 더 비싼 등록금도 자기들이 다 빌려서 학비 내고 돈 갚아 나가는데, 더 싼 너희들은 행복한지 알아.'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단순히 미국학생들의 등록금 대출 상환을 예로 든 것을 미루어 보아 하니, 글쓰신 분은 아무래도 등록금 대출에 대한 경험이 없으신 듯 하군요. 뭐 보아하니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교 나오신 듯 합니다만, 그렇다고 사립학교 등록금이 얼마인지는 설마 모르시는건 아니겠지요?

    글 마지막에 쓴 그 학생과 소속 학교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비아냥부터 먼저 봤으면 이 글 끝까지 읽지도 않고 그냥 접었을텐데, 아무리 개인 블로그라지만 이슈에 대한 비판은 더 체계적이고 신중해야지요. 아니면 태그라도 걸지 말아서 검색이라도 좀 덜 되게 하던가.

    추신으로, 그 고가의 카메라들 쓰는 분이라면, 등록금 인상 투쟁에 대한 폄하섞인 포스트 쓰지 마시고, 그냥 카페에서 폼잡으면서 비슷한 부류 사람들과 뒷말이나 까시기 바랍니다. 아, 댓글이 너무 비아냥거린다고 느끼셨다면, 그 이유, 저도 이 글 그렇게 느끼다는 말로 돌려드리지요.

    • BlogIcon [Tom] 2009/12/07 21:54 Modify/Delete

      안녕하세요.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은 더 체계적이고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잘 받았어요. 작성을 하고 나서 성의 없이 몇 줄을 적은 것 같았고, 지인들의 지적으로 삭제를 고려하다가 그냥 내버려 두었어요. 이런 댓글이 달려서 예전에 정리 하려던 내용을 써봅니다.

      4월 당시 행사 주체는 ‘예술, 이공계열 등록금 차등정책 폐지’와 ‘이명박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했지요.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삭발 행위에 대한 비판이었고, 이들의 요구가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차등정책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하지 못한 체 좋은 작품을 만들기 힘들고 실험여건이 나쁘다는 주장을 보며 정작 정부를 겨냥하기에 앞서 스스로 어떤 노력을 했는가 의구심이 들었던 겁니다.

      ‘제도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이란 문구를 어떻게 조합했는지 모르겠으나, 누가 제도적 약자이며 어떠한 무관심을 말하고 싶은지 부연이 부족하네요. 인종차별이나 지역차별이 한국 대학에 있나요? 맥을 잘못 짚은 게 아닌가요? ‘소비로서의 교육’과 맥락을 같이하는 까닭은 경제적인 문제로 이 사건이 귀결되기 때문이에. 우리나라 헌법을 보면 의무교육의 무상원칙과 기간이 명시되어 있어요. 초등학교 6년에 3년의 중등교육을 합한 9년이에요. 물론 선진국에 비해서는 빈약해 보이지만 제도적으로 딱 거기까지만 보장하고 있지요. 아래 부연하겠지만 우리의 현실을 직시했을 때 타국 지원체계와의 섣부른 판단은 삼가야 합니다.

      이쯤에서 제가 교육 정책 문제와 등록금 대출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나요? 주제와 인과관계에 있어 보이지만 별개의 논제이기 때문이지요. 시위 학생들은 등록금 인하만을 촉구하였지 지원제도나 금융체계의 조정에 대한 공론화를 누락했기에, 오히려 이들에게 시위의 방향을 바꾸라고 타일러야 하지 않나 싶네요.

      외국 가정의 평균수입/지출 패턴은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많이 다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떠한 척도로 비교를 할지, 만약 비교 자체가 가능하다고 한들 의미가 있는지 되묻고 싶네요. 당장 한국 내에서도 편차가 큰데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이가 없는 대목이거든요.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교육의 주체로서, 그리고 성숙한 지성으로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묻는 겁니다. 만약 고등교육을 이수할 능력이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하거나 미래 세대를 위해 제도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지요. 그러나 시위 학생들이 장학금 제도를 확대해 달라고, 학생금융을 바꿔 달라고 했나요?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등록금의 절대수치 비교에 왜 영국이나 노르웨이가 나와야 하나요? 그러면 시위 학생들을 모두 제도가 한국 보다 유리한 유럽으로 보내면 문제가 해결 된다는 말은 설마 아니겠지요? 우리나라에 어떤 장학금들이 몇 개나 있는지 알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한국장학재단에 대학 관련 장학금만 보면 83가지가 있고 외국 재단만 찾아도 제법 큰 숫자가 나와요. 또한 개인의 노력의 일환으로 학자금 융자란 선택을 제시하였지만 제가 어째서 이자까지 비교 해줘야 하나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거면 어차피 한국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거 아닙니까? 누구를 위해 금리까지 정리하여 보여줘야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고, 글의 의도와도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문제의 진단과 정의에 이어 반드시 나와야 하는 것은 대안의 제시입니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망정 글을 전개하다 말고 저에 대한 비방은 논리전개의 미숙함을 보여주네요. 제가 어떤 학교 출신이든, 등록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이 주제와도, jiro님과도 상관이 없지요. 그들에게 ‘너희가 행복한지 알아’라는 해석은 어떻게 나왔나요? 처음부터 진지한 태도가 아닌 댓글에 이렇게 장문을 달아주는 것도 아깝지만 어차피 쓸 생각이 있었던 글이라 남깁니다.

      해당 학교의 비리사건에 대한 언급은 위에 설명으로 충분하다고 봐요. 그래서 학생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가에 초점을 맞춰 봤으면 하네요. 정부나 고등기관을 찾는 것은 노력이나 해보고 도저히 안 될 때 탄원을 해야지 순서도 맞지 않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서 개선을 할지 모르는 것 같아 보여요. 용기를 내서 문제를 돌파하기 보다는 시위를 하는 게 훨씬 편리한 선택이었던 걸까요.

      의무교육과 고등교육의 구분이 선행된 다음에서야 대화가 통할 것 같네요. 교육을 이루는 주체들의 균형을 지키면서 강사진이나 학교 운영에 대한 부분도 살펴 보았으면 좋겠어요. jiro님은 아직 어린 나이이고, 주변에 교육계에 종사하거나 외국에서 대학을 나온 지인이 없어서 시야의 폭이 좁아 보이네요. 단순히 어설픈 삭발식으로 인해 쓰인 글은 상당히 복합하게 얽혀 있는 현실의 한 부분에 불과해요. 현 정권의 문제 및 보수 성향 인사 재편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겠지만 역시 주제와 벗어나기 때문에 더는 나가지 않겠습니다.

      꼼꼼히 블로그를 살펴보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을 하신 모양인데 잘 알지도 못하면 물어보던가 근거 없는 비아냥은 jiro님께도 해롭습니다. 주제에서 벗어나 저의 사생활이나 인격에 대한 평가는 치기 어린 불평으로 밖에 보이지 않네요. 좀 더 성숙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개인 블로그가 이 모양인데 조중동은 어떤지 좀 보셔야겠네요.

  2. 지나가던 행인 2009/07/01 19:30 Modify/Delete Reply

    게시물의 시작은 이 시대의 '삭발식'에 대한 황당함에서 시작한거죠?
    그렇게 이해했는데 리플을보니 제가 잘못이해했나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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