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새벽부터 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집안에 흩어진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작년 여름인가, 방 정리를 해주겠다며 내가 외출한 사이 다량의 책과 DVD를 창고로 넣어준 누나 덕분에 잊고 살았던 물건들을 하나 둘 발견했다. 그리하여 오후를 집에서 보낼까 했는데 장작가의 스케줄이 뜻하지 않게 변경되어 함께 갤러리를 돌아 보기로 했다.
yBa 악동(이제는 중년) 중 한명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아트선재를 먼저 찾았고 관람 후에 1층에 진열된 책들을 살피던 중 국제갤러리에서 2년 전에 만든 Roni Horn의 도록을 꺼냈다. 그의 작업 중에는 You are the Weather만 알았고 다른 사진들은 생소하여 '모르는 작가'라고 말을 흐리며 다른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초저녁에 글자가 눈에 들어올 것 같지 않아서 사진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직접 설명하는 영상 자료를 보기로 했다. 약 6년 전 누나가 생일선물로 사준 Contacts DVD 세트. 총 3장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1번 디스크는 포토저널리즘, 2번은 동시대 사진, 그리고 3번은 개념사진으로 아래 간단히 소개한다.
당시 저널리즘 사진에 심취해 있던 관계로 한 편만 보고 다른 두 개는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 어디에 놨는지만 기억하며 지냈다.
오늘은 3번 디스크를 선택했는데 낮에 봤던 로니 혼의 이름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의 주제와 의도는 일관성이 있는데 작업들이 꽤나 폭넓어 한 작가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 표현이 다양하다. 치열한 동시대 사진계에서 흔치 않은 미국 작가 아닌가 새삼 확인한다. (Alec Soth라는 혜성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시기)
윌리엄 클라인이 어느 날 사진작가들이 본인의 작업을 지금까지의 방식과 다르게 소개하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프랑스의 Arte France가 제작을 하기에 이른다. 충격적으로 다가온 건 조수가 아니면 구경할 수 없는 밀착지와 시험 인화물 등 작업과정을 공개한 과감성이었다. 이미 확고한 입지를 갖춘 작가의 여러 작업을 15분이라는 시간 안에 모두 보여줄 수 없기에 아쉬움이 많지만 이런 자료가 만들어진 데에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Volume1: The Great Tradition of Photojournalism
Henri-Cartier Bresson
William Klein
Raymond Depardon
Mario Giacomelli
Josef Koudelka
Robert Doisneau
Edouard Boubat
Elliott Erwitt
Marc Riboud
Leonard Freed
Helmut Newton
Don McCullin
굵직한 작가들이 포진하고 있는 1번 디스크.
카파가 없고 뉴튼이 포함 되어 있다는 점에 약간 의아했다. 그래도 매그넘 작가만 5명이나 있어서 과거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다.
Volume 2: The Renewal of Contemporary Photography
Sophie Calle
Nan Goldin
Duane Michals
Sarah Moon
Nobuyoshi Araki
Hiroshi Sugimoto
Andreas Gursky
Thomas Ruff
Jeff Wall
Lewis Baltz
Jean-Marc Bustamante
사진을 예술로 자리매김 시키고 갤러리 벽에 작품을 걸기 시작한 작가들의 모음집이다.
기록의 사진을 넘어서 연출사진의 등장을 정리해 놓았다.
Volume 3: Conceptual Photography
John Baldessari
Bernd & Hilla Becher
Christian Boltanski
Alain Fleicher
John Hilliard
Roni Horn
Martin Parr
Georges Rousse
Thomas Struth
Wolfgang Tillmans
2번 디스크에 빠진 이름들이 여기에 개념사진으로 정리되어 있다.
베허 부부는 사진역사에 확실하게 이름을 남기겠지만 그들의 제자나 기타 작가들은 어떨지 두고 봐야겠다. 신디 셔먼이 있었으면 했는데 어떤 연유로 제외 됐는지 궁금하다.
글을 정리하면서 새삼 느끼지만 Contacts라는 제목은 참으로 절묘하다. 1. 밀착인화란 전통적인 의미에 2. 작가들이 관객과 맞닿는 뜻과 3. 사진 역사의 접점 세 개라는 상징성에서 무릎을 치고 만다.
자신의 카메라에 애정을 어느 정도 품고 있다면 가장 신경 써주고 싶은 액세서리 중 하나가 바로 스트랩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의 Artisan & Artist社의 제품을 선호하며 별 생각 없이 모으다 보니 5개를 소유하게 되었다. 촬영할 때 가죽 끈을 손에 감는 느낌이 좋을 뿐 아니라 합성섬유 스트랩과는 격이 다르다. 격이 다르므로 비교를 할 필요가 없다.
SLR의 경우 매우 불친절하게 합성섬유 스트랩만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된 경우가 다반사다. 자사의 스트랩을 강요하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버릇 없는 녀석들은 상대 안 하면 그만이다.
A900은 다행히도 건전한 디자인 정신의 산물인지 M 스트랩을 장착할 수 있다. 저 클립이 스트랩과의 합체를 가로막고 있으나 무의미한 장애물에 불과하다. 플라스틱 부분을 들어 올리면 손쉽게 제거된다.
5년 여간 스스로 담아온 모습들을 정리하니 내가 거쳐온 환경과 지위에 따라 때로는 의도한 대로, 대분의 경우 우연의 흐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지배적인 생각은 인생에 있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극히 미미하며 그나마 가능한 부분 조차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삶이란 슬프고 고통스럽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를 사진을 통해 표현한 전례는 얼마든지 있다. 나는 나의 내면 표출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밀도 있는 고민을 시작한 건 작년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직설적인 성격과 게으름 덕분에 은유와 치밀한 해석을 요구하는 거창한 계획은 무기한 보류하였고, 대신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진들 -정확히는 반영된 나의 모습을 직접 촬영한 영상- 을 나열하기로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사회에 대한 작업도 비슷한 맥락을 안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주제 아래 영상 혹은 특정 사물을 누적하여 전시하는 전형적인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개인 블로그라는 공간을 변명으로 내세워 아직은 정확한 개념 조차 잡지 못했음을 시인하며, 일단 갈피라도 잡기 위해 무작정 끄적여 본다.
베른트(Bernd) (1931 – 2007)와 힐라(Hilla) (b. 1934) Becher는 현대사진에 있어 뒤셀도르프파(19세기 회화의 그것이 아니다)로 불리우게 되는 Andreas Gursky, Thomas Ruff, 그리고 Candida Höfer 등을 교육하였다. 우연한 기회의 베허 부부의 작업에 대한 글을 번역하게 되어 소개 하고자 한다. 변명 같지만 독어 원문을 영어로 옮긴 글을 다시 한글화 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존재한다.
[...전략] 여기서의 관건은 사진매체가 이룩한 정밀함과 정보전달의 비약적인 발전에 있다. 이 사진들은 향수(鄕愁)와는 아무런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으며, 또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19세기 미술의 산업에 대한 낭만적인 묘사의 시도 역시 없다. 베허(Becher) 부부의 작업 과제의 개요는 간략하다. 그들은 1969년에, “우리의 의도는 오래된 산업용 건물을 유물로 묘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지만 여러 형태를 포함하여 어느 정도의 완전한 현상들의 연결고리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과거에 선호된 방식이 규모가 큰 산업단지의 전망이었다면, 베허 부부의 작품들에서는 이 방식이 ‘산업 풍경’ 장르로 말석에 놓이며 다수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의 관심이 건축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독일 중부에 위치한 찌거란트(Siegerland)의 수많은 반목조 가옥들의 사진들은 비교적 초기 작업에 속하며, 베허 부부는 차츰 공장 작업장 내부도 포함시켰지만, 주제에 있어서 그들에게 건물들이 갖는 중요성은 당시 지배적이던 관념인 공간적 구성에 반하는 형태로 1967년 웬드 피셔(Wend Fischer)가 비유한 “기계장치 같은 구조”이다.
하기야, 권양기탑(捲揚機塔)도 수동으로 운영하던 권양기와 도르래의 매우 비대해진 기계적 테두리에 불가하다. 급수탑과 가스탱크도 원칙상 거대한 항아리와 통일 뿐이며, 분탄탑(粉炭塔)은 집채만한 코크스 바구니 같고, 냉각탑은 건물 보다는 기계장치에 가깝다. 이러한 “기계장치 같은 구조물”들은 고정된 장소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며, 그러므로 건축의 경계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건물은 해당 작업장에서 생산하지 못하며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현장에 쌓아 올려야 한다. 베허 부부의 주된 관심을 갖는 산업 단지의 모양은 지방과 지역 및 특정 장소의 물류, 교통, 그리고 지리적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기술적 건축의 가장 매료되었고, 그것들의 역사는 관심 밖이었다.”고 회고한다.
이러한 모양은 기술자의 의도적, 이성적 고려와 경제적 계산에 창출되었고, 객관화된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 그럼에도 편견이 없는, 혹은 기술적으로 전문성이 결여된 관객의 눈에는 건물들이 이성적이거나 기능적으로 보이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초현실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해 일부 평론가들이 지오르지오 데 치리코(Giorgio de Chirico)과의 연관성을 감지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어떤 평론가가 “산업 야수”들로부터 발산되는 거대한 침묵은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동시에 혼란스럽게 만든다. 인간, 목적, 혹은 의미를 빼앗긴 건축물은 이형(異形)으로 변이한다. 또 다른 평론가는 세부묘사가 이루어진 사진들은 인체 관절이나 성(性) 기관을 연상시키며, 기계와 공장은 고대의 폐허와 의젠 앗제(Eugene Atget)의 빈 거리의 애수를 뿜어낸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은 사진의 간결함이 그와는 완전히 반대로 전복시켜, 마치 솔기를 터뜨려 기괴함의 영역으로 빠져든다고도 한다. 베허 부부가 찌거란트(Siegerland)의 모양과 다양한 건물들의 표면성을 특징 짓는 “캘빈파적 바로크”라는 말이 씨가 되어 이런 추상적인 인상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은유적 꼬리표는 개별 구조물의 소박한 디자인과 과도하지는 않지만 풍만한 형태의 대비를 관찰할 것을 강조한다 – 예를 들어 발전소의 심장부를 구성하는 고로가스에 걸터앉은 거대한 파이프가 문어의 다리와 같다는 점에서 볼 수 있다. 펜슬베니아의 냉각탑 안에 결정체로 이루어진 구성물로부터 정교하고 얼핏 봤을 때 불안정해 보이는 컨베이어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는 베허 부부가 표면과 효과에 집중하고 있다고 잘못 이끌 수 있으나, 앞서 언급한 요소들에는 중요성을 부여하면 옳지 않다.
최우선적으로 베허 부부는 사물을 사진적 이미지로 보존하고자 한다. 그것은 유물적인 설비들의 운영이 더 이상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불가피하게 버려지거나 파괴되며, 새롭고 비용절감이 가능한 기계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베른트(Bernd)와 힐라(Hilla) 베허가 다루고자 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그들은 산업 단지들의 중요성을 인지하였으며 점차 더욱 빠른 속도로 부숴지고 교체되는 것을 보아 왔다. 또한 운영이 중단된 권양기탑과 용광로를 대체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50년대 후반 중부 유럽의 석탄 및 철강 업계에 불어 닥친 불황은 여러 지역의 경제적 몰락을 안겼고 동시에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왔다. 베허 부부는 사진매체야 말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파괴되는 산업 단지들의 외관을 기록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의 철저한 체계적인 방법론을 갖춘 정적인 그림의 개념을 평론가들은 완전한 자제의 증거로 해석하였고, 동시에 다양한 반응을 일으켰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기술에 대한 맹목적 숭배가 불러온 “마술적 사실주의”와는 확연하게 거리를 둔 베허 부부의 작업은 한때 근대화의 확산을 안겨준 업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기술에 의해 정체상태, 더 정확히는 하강상태를 구체화한다. 사진들은 단순히 상실에 대한 기록만으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사진 작업에 사용된 특수한 기술은 공장들이 운영 중이거나 폐쇄했던 사실과 무관하게 고로가스와 급수탑, 용광로, 그리고 압착기를 현실과 상징적인 영역 그 어디에도 귀착하기 어려운 유물적인 입지에 올려 놓았다. 그 대신, 이러한 양상은 관계항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대표적으로 상징적 관계성이 현실에 갖는 연장선상에서 그러하다. 티에리 드 뒤브(Thierry de Duve)는 베허 부부가 “유물적 장르”를 창시했다고 평가한다. 그가 지어준 형용어구는 베허 부부의 사진이 유물적인 특성과 기록의 혼합임을 뜻한다: 산업단지 혹은 그 일부분은 그 크기를 막론하고 유물적이거나 유물로 고려될 수 없으며, 사진은 현실을 나타내는 것 이외에 다른 역할을 갖지 않는다. 그 세부적인 형태에 있어 기술적 장치들은 베허 부부의 미학으로 걸러낸 사진들을 통한 사진적 기록으로써만 유물로 남겨진다고 암시한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사진은 무미건조한 현실에 유물적이고 시간을 초월하는 속성을 부여하는 기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진은 불명확한 현실의 모방의 척도만이 아닌 인덱스로도 기능한다. 본인의 견해에서 봤을 때, 드 뒤브는 “유물적”인 개념을 산업 단지들 혹은 그 부분들이 유물로 인정받지 못하고 유물로써 느껴지지도 않으며, 사진 또한 그러한 효과를 이뤄내지 못함을 강조하기 사용한 것 같다. 그럼에도 미학적 형태에서 베허 부부의 사진들은 현실의 재현에 있어서 유물적인 인상을 심어주기 충분하며, 이는 비록 무미건조한 사물을 정교하게 표현한 개별사진들(예: 60 x 50cm 크기의 은-브로마이드 프린트)이 주변에 만연하거나 퇴물이 되어 하찮음을 연상시킬 수 있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은 이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할 수 있으리라 본다. 또 다른 표현을 빌자면, 드 뒤브는 “유물적”이란 표현을 통해 베허 부부의 사진이 순수 기록을 넘어섰고 그들이 사물을 재현한 노력으로 인해 실제로 피사체가 갖지 못한 특성까지 심어준 점을 강조하려고 하였다. 그 어떠한 사물에도 아름다운 광택이 주어지지 않았고, 위상이 격상 또한 찾아볼 수 없으며, 낭만적인 방식의 신비화의 시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명암은 중립적인 입지를 견지하며, 객관적이고자 노력하는 태도, 장소 및 그림자의 부재, 중성적인 무한성, 반복되는 유사성과 차이의 집중, 체계적인 방식과 연속적인 나열의 속성, 거기에 베허 부부의 사진은 언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현실을 초월하는 느낌을 들게 한다.
2000년대 초반, 그러니까 정확히는 2003년에 캐논 10D를 본격적인 시발점으로 디지털 카메라의 포커스 문제가 커다란 화두로 떠올랐다. 풍문으로는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발견 하였으며 나름대로 자존심을 세우는 분야가 되었는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떠한 제조사를 불문하고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허용 오차 범위'라는 융통성 때문에 발생하였는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원본 크기, 즉 100% 확대를 하여 보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 반면, 과거 필름의 경우 135 포멧 이미지는 최대 크기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했다. 그러니까 조리개를 최대 개방한 상태에서 초점이 완벽하게 맞는지 아닌지는 그냥 대충 넘어가는 상황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 필름 면이 살짝 말려 있어서 약간의 오차 범위를 두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DSLR과 DRF 시대가 열리며 수리센터도 전에는 빈도가 아예 없거나 몹시 적었던 일을 이제는 매일 같이 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겨났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의 제품에 이상이 있다는 스트레스로 조정을 맡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편의가 도모되면 그에 따르는 불편함도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인가 보다.
M8의 경우 처음 몇달 동안 Summilux-M 35mm ASPH. 하나만 사용했는데 최대 개방으로 촬영할 때 스미룩스 특유의 치열함은 없고 힘이 빠진 사진이 간혹 보여서 의아해 했었다. 작년 12월 31일 송년회에서 호도형이 친히 테스트를 해주시더니, "핀(초점)이 안 맞는 거네. 점검 받아라~"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나의 게으름 덕분에 이번 주에 드디어 의뢰를 하여 찾아왔다.
자신의 카메라를 맡길 때는 사용하고 있는 모든 렌즈들을 갖고 가는 게 좋다. CCD 혹은 CMOS 센서의 위치가 살짝 벗어났거나 렌즈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이카의 경우 렌즈들은 모두 정상이었고, 나의 M8 말고도 같은 날 의뢰한 지인의 바디 역시 센서가 일탈(?)을 꿈꾸다 걸렸다. 그나저나, 카메라 없이 며칠을 보냈는데 그 견디히 힘든 허전함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