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소비 주체로서 올바른 권리 행사를 하고 있는가?
Scribbles 2009/04/15 02:27"평범한 미대생의 삭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비를 부담하지 못하는 것은 교육을 구입할 지불능력의 미달을 뜻한다. 교육의 기회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보기 좋다. 그 시간에 다른 방법으로 교육비를 조달하기 보다는 시위를 하는 방법도 나쁜 선택이 아니다. 누군가는 해줘야 하니까. 그러나 삭발이 이성적인 행동은 아니거니와 이들의 주장에서 제대로 된 논리를 찾기 힘들다.
무엇보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장면은 삭발을 하면서 우는 모습이었다. 과거에는 삭발을 하며 비장한 표정이라도 연출했지, 이건 무슨 곱게 자라 험한 꼴 한번 안 본 아이가 자신의 생머리가 아까워서 우는 표정이 아닌가? 기사를 인용하기도 싫고, 할 가치도 없다. 다시는 어설픈 쇼 따위를 하며 비겁한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한다. 만약 작업의 형태로 진행한 퍼포먼스였다면 최하점을 주고 싶다.
언론에서는 여성 총학생회장의 삭발만을 조명하고 있는데 균형 잡힌 보도를 위해서는 다른 나라, 혹은 능력이 부족하면 다른 전공들과 비교를 했어야 한다. 이 학생이 미대생이라고 하니 귀찮지만 외국 미대들과 비교를 좀 해보자.
간단하게 요약하여 일년 등록금만 $20,000 ~ 40,000 정도로 보면 된다. 참고로 페인팅에서 1위인 Yale은 순수 학비만 일년에 $28,500이다.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의 경우 학점당 $1,140로, 일년에 18학점을 들으면 $20,520가 나온다. 4월 15일자 서울외국환중개 고시 매매기준율이 USD/KRW 1,325.30 이니 일년에 최소 2,650만원이 드는 셈이다. 외국에서는 교육을 위해 대출을 받고 몇 년 혹은 몇 십 년에 걸쳐 돈을 갚아나간다.
등록금 인상이 대두될 때마다 다른 쪽의 목소리는 누가 내는가? 물론 등록금=교육의 질의 공식을 제대로 성립하지 못한 학교측의 잘못도 있다. 그러나 교육에 종사하는 교수, 그리고 그 보다 훨씬 어려운 위치에 있는 강사들의 입장은 도대체 누가 대변하는가? 예쁘장하게 생긴 여대생이 삭발하면 띄워주고, 힘들어하는 강사들이 시위하다 강제해산 되는 현실은 어디에 처박아 놓은 것인가?
학생들은 3월에 교수들의 비리 조사를 무마하기 위한 입시 실기의 폐지 소식을 보고 느낀 것이 없는지 되묻고 싶다. 양질의 교수진과 커리큘럼을 원한다면 그 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수준이 나오도록 성숙한 소비자의 역할을 해야지, 자발적으로 교육의 질을 떨어뜨려 다른 학생들과 교육계 종사자들에게 선의의 피해를 주는 행동은 자제해야겠다. 어째서 무능하고 비윤리적인 교육자들의 퇴출과 교과과정의 시정을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는가?
동조하는 학생들아, 고등교육을 받고 싶으면 착각에서 깨어나도록 해라. 대학이 취업을 보장시켜주는 곳도 아니고, 미술 업계에서 그런 썩은 정신상태로 생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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