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walking along a path with two friends—the sun was setting—suddenly the sky turned blood red—I paused, feeling exhausted, and leaned on the fence—there was blood and tongues of fire above the blue-black fjord and the city—my friends walked on, and I stood there trembling with anxiety—and I sensed an infinite scream passing through nature.”
- Nice 22. 01. 1892, Edvard Munch
뭉크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림 속의 인물이 절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꿰뚫는 거대하고 무한한 외침을 느끼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귀를 틀어막고 있다. 유화는 그로부터 약 1년 뒤에 완성되었다.
근래 들어 심신이 피로하여 신경이 몹시 날카로워진 상태다. 청각이 유난히 예민한 편인데 굴곡진 건물을 지나가면 공기의 울림 때문에 멀미가 나기도 하고,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청각이 닿는 영역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대화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다.
나의 고통은 일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세 개의 자명종이 침대 주변에서 울려대는 불협화음으로 시작하여 아침식사 중에 가족이 식사하는 소리로 이어진다. 특히 액체를 입에 넣을 때 나는 소리는 사람에 따라 전혀 내지 않거나 몹시 추접할 정도로 거북한 데시벨의 영역에 도전하는 부류로 나뉜다. 한국인들은 대다수가 후자에 속한다. 조용히 교양 있게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음용할 줄 아는 인물이 아니면 테이블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종종 느낀다.
출근을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역 입구에는 요즘 만연하는 타블로이드판 신문사에서 고용한 고블린 같은 중년의 아줌마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내용은 아무 딴에 쓸모 없는 잡담인데 무엇이 그리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인지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을 향해 목청이 떠나가라 외친다. 이른 시간부터 나와서 고생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때로는 계단 밑으로 떠밀어 버리면 어떨까 하는 충동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온다. 제발 그 쓰레기 같은 타블로이드들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아줌마들과 함께.
지하철에 탑승하면 꼭 내가 출근하는 칸에 바로 다음 역으로 이동하는 할머니 넷이 올라탄다. 이들의 특징은 양쪽을 마주보고 두 명씩 앉아서 서로에게 쩡쩡한 소리로 자신들의 무지함을 공표한다. 사람들이 쳐다 보아도 그들은 마냥 기쁘게만 보인다. 좋겠다.
내 나이 정도 되는 여성들은 어느 정도 사회화 되어서 교양은 있을 법한데 애인을 깨워주고 때론 직장상사나 친한 친구의 험담을 하며 귀를 따갑게 해준다. 아저씨들은 이미 포기해서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단계까지 들어섰다.
출근길에 내게 없어서 안될 필수품이 바로 나의 이어폰이다. Shure에서 나온 E4c라는 모델인데 특징은 다른 이어폰과 달리 귀 속으로 집어 넣는 형식에 있다. 세상과 완벽한 단절이 가능하다. 덕분에 나는 비교적 잡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교양 없는 남성들과 일부 여성들이 내 옆에서 신문을 활짝 펼쳐서 읽거나, 다리 근육을 완전히 이완하여 내게 지탱하려는 경우가 종종 거슬리긴 하지만 나의 귀를 세상의 끔찍한 소음에서 구호하는 행위는 사뭇 경건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천만다행히 아침에는 불법음반을 판매하는 행상인들이 없다.
무사히 출근을 했으나 이어폰과는 슬픈 이별이 필연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직장 내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약 9시간 동안 나는 무방비로 사무실을 꿰뚫는 거대하고 무한한 외침을 느끼고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이 글을 작성하는 점심시간 만큼은 다시 따스한 음악의 보호 아래 제정신을 차리고 있지만 말이다.
일단 회사는 채용과정에서 엄격한 음성 선별을 거치지 않는 사실이 분명하다. 또한 형식적인 면접으로 이들의 평상시 화법이나 통화습관은 안중에 두지 않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말았는데 그에 따른 모든 결과는 바로 내가 떠안게 된다. 그 유형과 특성은 다양하나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신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진 부류. 남들은 단 일이 분 만에 끝내는 통화를 몇 십 분 동안 끌고 나간다. 통상 능력이 없거나 멍청해서 핵심을 놓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자신이 일하고 있고 무엇인가 생산적인 노동을 통해 회사에 기여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경우. 2. 연극무대 혹은 정신병동에서 튀어나온 듯한 부류. 기괴하고 괴팍한 목소리와 화법. 일반적으로 성격이 더럽지만 업무는 그나마 잘하는 편이어서 사람들이 이를 악물고 참는다. 3. 사생활을 방송하는 부류. 그래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상스러운 욕을 그렇게 많이 하는 거냐?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인력구성은 군대의 그것과 비슷하다. 쉽게 말해서 장교단과 부사관 집단으로 구분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교육의 수준이 얼마나 중요한지 군대와 직장에서 나는 절실히 깨달았다. 한번은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라서 ‘기왕 사회생활 하며 필연적으로 쓰레기 같은 이들과 일을 해야 한다면, 나는 조금은 더 잘난 쓰레기들을 상대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고 이제 곧 실행에 옮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