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하신년

Photographs-Snaps/2012 2012/01/10 20:23


黑龍의 해는 고쿠류로 산뜻하게 시작.


Seoul
20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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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신년  (0) 201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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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a

Photographs-Snaps/2011 2011/12/15 18:47



Boston
20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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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a  (0) 2011/12/15
Book of the week  (0)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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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quin Rodrigo - Concierto de Aranjuez: II. Adagio

Scribbles 2011/05/09 22:06

가족과 스페인 발렌시아에 살던 호아킨 로드리고(1901-1999)1927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음악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de Musique)에서 폴 뒤카(Paul Dukas)의 제자가 됐다. 그리고 다음 해에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 피아니스트 빅토리아 캄히(Victoria Kamhi, 1905-1997)를 만나게 된다. 이미 로드리고의 피아노 서곡을 접해 호감을 갖고 있던 그녀와 관계가 점차 발전한다. 그들의 사랑은 1933년 결실을 맺어 발렌시아에서 결혼하였고, 신혼여행을 아랑훼즈에서 보냈다. 그러나 고향의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프랑스 유학을 접고 부인도 두고 마드리드로 향한다. 음악공부를 재개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갈 방법을 모색하던 중 레지옹 도네르(Legion d’Honneur) 일원인 작곡가 친구 마누엘 데 화야(Manuel de Falla)의 도움으로 Conde de Cartagena 장학금을 획득해 빅토리아와 상봉한다.

로드리고는 1936 장학금을 갱신하여 독일 바덴바덴으로 터전을 옮겼으나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지원금이 끊겼고 삼 년간 가난에 시달렸다. 둘은 어렵게 프라이부르크에서 스페인 난민 신분으로 음악강습으로 생활을 꾸려나갔다. 1938년 산탄데르 대학에 여름 강의 요청을 받아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같은 해 파리 여행 중 기타 연주자인 레히노 사인즈 데 라 마자(Regino Sainz de la Maza)와 볼라르크 호아킨 후작부인(Marques de Bolarque Joaquin)과 나눈 점심식사를 계기로 기타 협주곡 작곡을 결심한다. 마침 출산을 앞둔 부부는 아이에 대한 큰 기대를 품고 있었으나 불행히 사산했고, 빅토리아 마저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어서 깊은 슬픔에 빠졌다. 1939년 인민전선파가 내전에서 승리하였고 로드리고는 그간의 고통을 뒤로하고 마드리드에 정착한다. 이 때 협주곡의 상당부분이 완성되었고 점자로 작곡한 분량을 부인이 악보로 옮겼다. 그리고 드디어 1940 11 9 바르셀로나 Palau de la Musica Catalana에서 대중에 처음으로 공개됐으며 곡을 헌정한 마자가 초연했다.

이 글에서는 2악장, Adagio에 대해 보다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평소에 말을 아낀 부부였기에 빅토리아가 만년에 2악장의 작곡 사연을 소개하기 전까지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1937년 게르니카 폭격의 비통함을 담았다거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성주간(Holy Week)에 부르는 민요 사에타(saeta)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널려 퍼졌었다. 그러나 작곡가 개인의 애절한 사랑과 슬픔 담은 악장이다. 빅토리아는 아들의 사산을 그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순간으로 기억했다.

본 작품은 중간 악장이 느린 18세기 후반 고전주의 협주곡 형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1악장과 3악장에서 탈피한 것처럼 보이는 오케스트라의 리토르넬로(ritornello) 2악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B단조로 시작하는 2악장에서 여섯 현을 모두 퉁기는(rasgueados) 연주는 로드리고 본인의 심장박동을 묘사한다. 위독한 빅토리아가 무사하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기타도 잉글리시 호른이 두 번째 마디부터 연주한 단3화음의 슬픈 주선율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고전주의 작곡 형태로 주제의 전개와 재현이 이루어지고 리토르넬로로 끝난다.

슬픔은 곧 분노로 변한다. “신이시여, 어째서 저의 아이를 데려 가셨나이까?” 화가 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두려움으로 떤다. “부디 그녀만은 제 곁을 떠나지 않게 해주시소...”

카덴차는 일반적으로 협주곡 1악장에서 듣게 되는데 아랑훼즈의 경우 2악장에 있으며 C#단조로 쓰였다. 연주자 페페 로메로(Pepe Romero)조용한 울먹임이라고 설명한다. 3음의 변형의 분포는 트릴로 감춰지기도 한다.

로메로에 따르면 카덴차는 점차 내면으로 향하며 동시에 신을 찾는 노력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아래 악보 발췌 부분에서 보여지는 상승-하강 반복은 어느 신사를 위한 환상곡(Fantasia para un Gentilhombre)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아랑훼즈 다음으로 꼽는 대표작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작곡의 유사성에 있다고 보겠다. 실제로 그는 C#단조 및 주제와 변주 기법을 빈번히 채용했다.

감정의 분출은 전합주(tutti)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이때 로드리고는 신과 대화하고, 그의 음성을 듣게 된다. 악장 초반과 같이 목관 악기들이 주제를 각각 연주하며 결말을 장식한다. 또한 감정의 격한 표현을 맡는 현악 부분이 여기에서도 기타를 압도하지 않는 배려를 보여준다.

2악장 끝에서 F#단조로 바뀌는데 극적 전환을 맞는 대목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신에 맡기고 그 뜻을 받아들이며 비로소 평화를 찾는다. 최후에 두 마디는 영혼의 승천을 상징한다.

아랑훼즈를 비롯한 로드리고의 작곡 방식은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영향을 받은 순수주의(casticismo) 성향이 짙은데 칭송과 더불어 야유의 대상이었다. 비록 현대적인 해석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슬렀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아방가르드 주류에서 벗어나 쉬운고전주의 형식에 스페인 전통음악을 녹여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다양한 종교적 색채, 예를 들어 이슬람의 문화에 뿌리를 둔 플라멩코, 유대교 전통의 음계, 그리고 기독교 성가의 변주를 혼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피아노 연주자였음에도 기타를 위한 음악에 전념한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결과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악기의 위상을 높이고 스페인의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참고자료:

호아킨 로드리고 재단 웹사이트

A Composer Who Found Strength in an Inner Vision, NYT, 1999

Shadows and Light: Joaquin Rodrigo at 90, Larry Weinstein, 1994

The Musicologist Behind The Composer: The Impact Of Historical Studies Upon The Creative Life In Joaquin Rodrigo's Guitar Compositions, Jose Antonio Doni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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